꿀로그 2015. 12. 4. 09:44

 

 

 

위구태왕(尉仇台王, ? ~ ?)은 부여의 왕으로 이름은 위구태(尉仇台)이다. 구태(仇台)라고도 하며, 백제 건국 시조로 전하는 구태(仇台, 또는 우태(優台)와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또한 위구태왕 이전에 위구태라는 부여의 왕자가 사료에서 나타나는데, 위구태왕과 다른 인물로 보인다.[1]

부여 왕자 위구태

위구태의 선대는 알 수 없으며, 생몰년 또한 알 수 없다. 120년에 부여왕의 태자가 후한에 사신으로 왔는데, 이 태자의 이름이 위구태이다. 위구태는 후한 안제로부터 인수(印綬)와 금태(金綵)를 받고 돌아갔다. 122년에는 고구려·마한·예맥의 군사가 현도군에 쳐들어 오자, 부여에서 왕자를 보내 구원하도록 하였는데, 이 왕자가 위구태일 가능성이 있다. 이 이후로 오랫동안 위구태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으며, 167년에 부여왕의 이름이부태(夫台)였던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왕위에 올랐다가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부여의 태자 위구태가 본래 구태이고, 후대의 부여왕 위구태는 구태와 닮았기 때문에 닮았다는 의미인 위(慰, 位와 통하는 것으로 봄)를 붙여 이름을 위구태라 지은 후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2]

위구태왕

부여의 왕 위구태는 2세기 후엽에 나타난다. 후한 말기 요동의 군벌 공손탁이 선비 및 고구려 등의 이민족과 대립하자 부여는 공손탁의 세력에 귀부하였다. 공손탁은 부여의 왕 위구태에게 종녀(宗女 : 조카딸)을 시집보내 혼인 동맹을 맺었다. 이후 위구태가 죽자 아들 간위거가 뒤를 이었다.[3]

백제 시조 구태

가족 관계

  • 부여 왕자 위구태
    • 부왕 : 부여왕, 이름 미상
    • 아들(?) : 부태왕(夫台王)